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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트-고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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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향 == '''사비에트'''는 이 전쟁으로 1만 5천여 명의 전사자와 5만여 명의 부상자를 냈고, 간염과 장티푸스 등 풍토병에 걸린 장병도 40만 명을 넘었다. 사비에트 체제가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10년 동안의 전비와 원조 부담은 1990년대 사비에트 경제의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고란치」라고 불렸는데, 이들은 참전 사실을 드러내지 말라는 당국의 압력과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알코올 중독과 범죄, 자살 문제로 오랫동안 사회 문제가 되었다. 공식 기록이 전사자를 「국제주의 의무 수행 중 사망」으로만 적고 아연 관에 담아 조용히 돌려보낸 일은 사비에트 사회에 깊은 불신을 남겼다. '''고랜드'''가 입은 피해는 비교할 수 없이 컸다. 최대 200만 명이 숨졌고, 470만 명이 나라를 떠났으며(유고랜드 약 320만 명, 그 밖의 인접국 약 150만 명), 200만 명 이상이 국내에서 떠돌았다. 전쟁 기간 뿌려진 지뢰는 1,000만 발 이상으로 추산되며, 지금도 해마다 사상자를 낸다. '신의 식탁'이라 불리던 곡창지대도 무너졌다. 지하수로와 관개시설이 폭격과 방치로 파괴되면서 1987년의 곡물 생산량은 1978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농민들은 물을 적게 먹고 값을 잘 쳐 주는 양귀비로 옮겨 갔고, 이는 고랜드가 오늘날 유고랜드·동사랜드·빌베른과 이어진 마약 경제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유고랜드의 난민촌도 다음 세대를 만들었다. 난민촌 주변에 세워진 마드라사들은 성베르트 정권 시절 폐쇄된 고향의 마드라사를 대신했고, 전쟁고아로 자란 이 학교의 학생(탈리브)들이 훗날 탈레반의 주축이 되었다. '''루이나'''에게 사이클론 작전은 오랫동안 냉전기 최대의 성공 사례로 여겨졌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그 대가가 드러났다. 무자헤딘에게 넘어간 루이나제 페리트 미사일이 전후 행방불명되자, NIA는 1993년부터 1998년까지 「페리트 회수 계획」을 벌여 한 발에 최대 10만 달러를 주고 되사들였다. 공급된 900여 발 가운데 회수된 것은 60% 남짓이었다. 사비에트가 철수한 뒤 루이나의 관심은 급격히 식었고, 고랜드는 내전 속에 방치되었다. NIA는 탈레반이 등장했을 때에도 "당장의 적은 공산주의"라는 논리로 이들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양가적 태도를 보였다. 불과 몇 해 뒤 루이나가 바로 그 공산 정부와 손잡고 탈레반을 치게 되면서, 이 판단은 루이나 외교사의 대표적 실책으로 꼽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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